








지금은 2054년 8월 13일.
히어로 팀 코포이, 그리고 빌런 팀 티배깅은 끊임없이 싸움을 지속해 왔습니다. 당신은 이들 중 한 명일 테고요.
긴 대립 끝에 티배깅은 뉴뉴욕시의 호레이즌 박물관에 테러를 예고하였습니다. 코포이를 유인한 뒤 몰살하기 위해서였죠.
그러나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코포이가 기습 작전을 펼쳤고, 결국 두 팀은 박물관에서 전면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혼신의 힘을 다한 장시간의 전투. 한순간이라도 멈출 수 없는 격돌이었습니다.
박물관의 기둥은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냈고, 견디지 못 했습니다. 당연히 그대로 무너져 내릴 수밖에요.
당황한 두 팀은 바닥에 큰 충격을 주어 부순 뒤,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눈을 뜬 곳이 바로 여기, 지하 갱도입니다. 우리는 협력, 혹은 대립을 통해 한 발 한 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것은.…


… 여기서 다른 얘기를 해 볼까요? 사회에 대해서 말이에요.
올해는 2054년도입니다. 과거 사람들은 이맘때쯤 있을 만한 것들로 하늘을 나는 자동차, 우주 여행, 인간을 지배하는 인공 지능 등을 상상했다고 하죠. 하지만 유감이군요. 당신도 아시겠지만, 지금의 사회는 21세기 초반… 그러니까 2010년도, 2020년도의 모습에서 그다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계가 널리 보급된 것 외에는요. 덕분에 일반인들도 기계 의수와 의족, 인공 장기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아, 가정용 안드로이드는 아직 없어요. 인공 지능이라면 모를까요?
그런 사회에서, 2년 전부터 이능력자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수는 대략 2백만 명, 전세계 인구가 100억 명 정도이니 얼추 0.0002%라는 계산이 나오는군요.
아무튼 이능력자의 등장으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180도 변해 버렸어요. 이능력을 사용하는 범죄자들, 그들을 막고 이능력자 인식 개선을 목표로 결성된
평화 이능력 기구. 금세 익숙해져 점차 이능력자를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 지금 사회는 그런 모습이에요.


그럼 다음 이야기를 해 보죠.
왜 갑자기 이능력자가 등장한 걸까요? 사실 이들은 2년 전에 느닷없이 발생한 게 아니에요. 정확하게는 8년 전, 2046년도에 가장 먼저 나타났어요.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지금은 이능력자에 대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능력은 바이러스 감염을 통해 발현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얘기예요. 그야 누구든 이능력자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감염 경로가 매우 한정적이었어요. 바이러스는 호흡을 통해 기관지에 침투해야만 했는데, 공기 중에서는 몇 분밖에 살아 있지 못 했거든요.
그것이 현재 이능력자가 전세계에서 0.0002%밖에 되지 않는 이유랍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 감염 증상은 어땠을까요? 간단합니다. 처음에는 감기와 유사한 반응을 보이다가, 이성과 자아, 기억을 상실한 채 생체 반응이 희미해져요.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부터 부패되기 시작하며, 그야말로 좀비와 같은 상태가 되죠. 감염자를 완전히 변이시킨 바이러스는 그대로 소멸해 버립니다. 이후에는 이능력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며 본능에 따라 움직이게 돼요. 타인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고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가장 소중하거나 강렬한 기억을 자극하는 사건을 경험하면, 모든 기억과 자아를 되찾고 감염 당시에 훼손된 부위 또한 회복됩니다. 회복 속도에는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당신이 이능력자라는 건 이미 이런 일을 경험했다는 거겠죠.
이능력은 가장 소중하거나 강렬한 기억에 영향을 받아 생겨났어요. 어떤 이는 꽃에 관한 기억으로 꽃을 피우는 능력을 갖게 되고… 어린 시절 어두운 곳에 고립된 기억은 빛과 그림자에 관한 능력을 선사하기도 하며, 도박에서 대박난 기억이… 뭐, 다양한 예시가 있겠네요.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주의 사항을 말씀드릴게요. 좀비라는 명칭을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당시 감염자들은, 누가봐도 좀비의 모습이었으니 말이에요.
생화학 테러
이능력자가 발생한 사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생화학 테러예요.
생화학 테러는 모두 비슷한 패턴을 보였어요. 누군가가 퍼뜨린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감염되었고, 정부는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구를 통째로 격리하였습니다. 모든 감염자가 기억을 되찾자 격리가 해제되었고요. 이 과정에서 사상자와 부상자도 많았습니다. 깨어나지 못 한 감염자는 사태가 정리될 때
사살됐거나 깨워졌기 때문에 지금은 존재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공통점을 가진 사건에는 좀비 사태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2046년도 7월 29일에 발생하여 11월 29일 종료된 신서울시 좀비사태, 2049년도 5월 3일에 발생하여 6월 9일에 종료된 뉴뉴욕시 좀비사태, 마지막으로 2052년도 1월 28일 날 발생하여 3월 15일 종료된 뉴벨타시 좀비사태가 있어요.
혹시 당시 격리 구역 내부 상황이 궁금하신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보는 것조차 괴로울 거예요. 격리벽이 하늘을 봉쇄해 빛조차 들지 않는 곳에 물자 공급도 없었고, 격리 구역 내부에 있던 이들은 전부 감염돼서 좀비가 되었어요. 주위에는 파괴된 건물과 시체가 널려 있었죠. 끔찍한 기록이네요.
이능력 실험
물론 이능력자는 생화학 테러뿐만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생겨났습니다.
첫 좀비 사태 발생 이후 바이러스에 관한 정보가 일부 기업과 연구원들에게 넘어갔어요. 정보를 얻은 방법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지만, 거래를 통해 정보를 넘겨받은 것 같더군요. 그들은 정부의 눈을 피해 음지에서 인체 실험을 강행했어요. 실험 내용도 다양해요. 이능력 강화, 한계 시험, 다중 능력 등등…
정보를 가진 사람이 꽤 있었으니까, 어쩌면 당신도 휘말렸을지 몰라요.


원래 이능력자들은 정부에 의해 능력을 철저히 통제당했어요. 이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평범한 민간인처럼 살아왔었죠.
언론도 이능력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으며, 혹시라도 발각될 경우… 법을 지키지 않은 책임을 물었으니까요.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이능력의 존재가 드러난다면 사회적 통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에요. 이능력을 범죄에 이용하거나 국가적 병력으로 사용한다 해도
이들을 막을 수단이 없을 뿐더러, 이능력자들이 생체 무기 취급을 받을 게 뻔했어요.
그러나 2052년도 2월, 전 세계에 이능력자들이 전투하는 모습이 방송되었습니다. SNS와 여러 매체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앞다투어 이능력자에 관해 이야기했고, 결국 사회에 이능력자가 드러나고 만 거예요. 그와 함께 정부에서도 이능력자 통제를 포기하였습니다.
지금 세상은 이능력자를 받아들이며 변화하는 추세랍니다.


정부의 통제 포기 소식을 접한 각 정부 소속의 이능력자들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캐나다의 무너진 뉴벨타시에 평화 이능력 기구, PST를 창설했답니다. 많은 이들의 노력 덕에 2052년 10월 4일, 국제 기관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PST는 모든 이능력자들이 배척받지 않기 위해 힘쓰고, 이들의 힘을 평화에 기여하는 용도로 사용하도록 도움을 주었어요. 이능력자들의 능력 재활, 이능력을 이용한 범죄 근절, 업무 처리 등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도맡은 일이 많다 보니 인력이 부족해서 가입 방법도 어렵지 않습니다. 기관에서 스카우트하거나, 직접 PST에 방문하는 거죠.


히어로는 PST 소속의 평화 유지인을 가리킵니다. 팀으로 뭉쳐 범죄자를 상대하고 빌런을 제압하며, 그에 대한 포상을 받는 이들이에요.
빌런은 이능력을 사용해 범죄를 일으키는 모든 이들을 칭합니다. 테러, 은행 강도, 좀도둑까지도요.
그렇다면 히어로 팀 코포이, 그리고 빌런 팀 티배깅이 왜 대립하게 되었을까요? 이들은 단순히 히어로와 빌런이기 때문에 대립하는 것이 아니에요.
2054년 3월 20일 평소와 같았던 금요일.
어느 빌런 팀의 보스가 거대한 이벤트를 계획했어요. 미국 전역의 전자 기기에서는 그의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죠.
화면에는 보스의 모습과 함께 PST 소속 히어로 두 명이 부상을 입은 채 묶여 있는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선택하는 한 명을 살려 주겠다]고. PST는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습니다. 시간이 지체되면 두 사람 다 위험해질 것이라고 판단, 그렇게 [구할 대상]을 말했지만… 보스는 오히려 그들이 말한 [구할 대상]을 끔찍하게 죽이고 떠났어요.
살아남은 히어로… 그가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짐작이 가시나요? PST에 배신감을 느끼고 빌런이 되어서, PST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고 말았습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PST는 이 빌런 팀을 배척하기 위해 적절한 이들을 모아 하나의 팀을 편성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팀, 코포이지요.
이쯤 들으면 아시겠죠? 여기서 말하는 빌런 팀이 누구인지. 네, 바로 팀 티배깅이에요.
두 팀은 수많은 충돌 끝에 현재 상황에 이르렀어요. 격렬한 대립은 많은 팀원을 희생시켰고 이제는 양쪽 다 10여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원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그저 둘 중 하나가 무너질 때까지 전쟁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에요.



